현대중공업 ‘9년 무분규’ 기록은 노조원 ‘사찰’로 가능했다
현대중공업 ‘9년 무분규’ 기록은 노조원 ‘사찰’로 가능했다
  • 박홍준 기자
  • 승인 2016.03.23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랙리스트 만들어 탄압…노조 선거 개입·하청노조 설립 방해 등 부당노동행위도 일삼아

[비즈온 박홍준 기자] 현대중공업이 노동조합 간부의 성향을 ‘강성·중립·친회사’로 구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고 이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중공업이 지난 2013년까지 무려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회사측의 전사적인 노무관리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사측은 전사적인 노무관리로 노조대의원 선거에 개입하고 하청노조설립을 방해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왔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 노사는 새로운 갈등국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 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사진 현대중공업 기업블로그)

최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현대중공업 해양도장부 운영과장을 지낸 이 모씨가 등장해 “회사가 노조 조합원 성향을 R(적색·강성), Y(노란색·중립), W(흰색·친회사)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며 “R에 해당하는 조합원이 많아질 경우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R를 Y·W로 유도하는 전략을 썼다”고 폭로했다. 회사측이 노조간부를 중심으로 노조원을 대상으로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해온 것이다.

이씨는 “R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필터링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정파 가운데 강성인) 전노회, 청년노동자, 공대위 쪽 사람들이 출마하면 그들이 집에 가서 씻으러 (욕실에) 갈 때까지 관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04~2011년 현대중공업 재직 당시 작성한 수첩을 공개, 회사측이 노조 활동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하청노조 설립을 견제하려 한 내용을 폭로했다.

이 수첩에는 “공대위·분과동지회(현장조직) 일거수일투족 보고-사장님 지시 일일단위 보고” “대·소위원 근무상황 매일 확인”, “목표가 없으면 전략의 효과는 없다. 중간치에 있는 조합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하자”, “부서 내 취미서클 모임에 가입해 친화활동 해라” 등의 메모가 담겨 있다.

이는 노조간부와 현장조직에서 활동하는 노조원을 감시하면서 일반 조합원을 회사 쪽으로 포섭하려는 의도였음을 엿볼 수 있다.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견제하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수첩에서는 현대중공업이 하청노조 설립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정황도 확인할 수 있는 메모도 발견된다. 수첩에는 “하청노조 발생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협력사 말 많은 사람 빨리 정리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하청노조 현재도 활동 중, 직영이 감당 못한다”, “협력사 동향 철저히 파악”등은 노조설립을 최대한 막겠다는 사측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회사측이 노조선거에 개입하려 한 정황도 눈에 띈다. 수첩에는 “대의원 출마 예정자 인물 검증해야 한다. 인물 확정시 연말까지 관리토록 하자”, “부서별 면담 본격적으로 가동”, “불리할 경우 유세를 하지 않고 투표 실시”, “챙겨야 할 부분은 철저하게 엄밀하게 해야 한다. 반 중심으로 인당 8천원 지원해 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씨는 “노조 대의원선거 때 전노회·공대위·청년노동자회 등 강성조직 후보가 대의원으로 출마하려면 일정 인원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막았다”며 “투표시에는 관리자급이 투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투표용지를 접지 못하게 한 사례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측이 노조선거에 직접 개입해 부정투표를 조장했다는 말이다.

이 문제와 관련, 백형록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과 하창민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22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015년 1월 치러진 현대중공업노조 대의원 선거 직후 회사 쪽이 대의원의 성향을 분석해 관리한 ‘27대 대의원선거 득표 현황’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해양사업본부 대의원에 출마한 47명의 소속과 당락 여부 득표 현황과 함께 대의원들의 성향을 R, Y, G 등 3가지로 분류한 내용이 들어있다. 예컨대 시운전부 소속으로 대의원에 당선된 이모씨와 조모씨는‘R’로 표기됐다.

노조측은 기자회견에서 “회사는 그동안 회사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현장조직의 개인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며 철저하게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탄압해왔다. 과연 이런 행위가 세계 1등 조선소 대기업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정상이냐”며 회사 쪽의 사과와 경영진 문책,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개인이 임의로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면서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고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