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비즈온 안옥희 기자] 롯데그룹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중국측의 사드 보복은 지난달 말 롯데그룹이 소유한 성주 스카이힐스 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최종 결정되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사드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 볼모로 잡힌 롯데는 무차별 난타를 당하고 있지만, 정부 역시 뾰족한 수가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드보복으로 인해 롯데가 20년 넘게 공들인 중국사업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7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부의 사드배치 강행으로 사드체계의 일부가 한국에 도착했다. 한·미 양국 군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작업을 전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사드보복 강도를 높여왔던 중국이 어떤 제재를 가할지 관련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유통업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의 사드부지 제공이 결정된 지난달 말부터 이달 6일까지 중국에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롯데마트는 23곳이다. 중국 현지의 롯데마트 점포 수는 총 99곳으로, 4곳 중 1곳이 영업정지를 받은 상황인 셈이다.
이번 무더기 영업정지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안은 ‘스프링클러 주변에 물건이 있다’, ‘방화문 일부가 파손됐다’ 등 사소한 소방법·시설법 위반이다. 생트집에 가까운 이유로 중국 당국이 롯데마트에 30일 이내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만약 23개 점포에 영업 정지가 한 달가량 지속된다면 롯데마트는 20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앞으로 영업 정지되는 롯데마트 숫자가 계속 늘어난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잠정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중국 현지의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에 대한 당국의 행정 사법적 압박과 중국 현지인들의 롯데제품 불매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은 롯데제품을 필두로 한국산 제품 모두를 매장에서 빼버리는 등 한국산 판매 금지도 확산하고 있다.
사드보복은 갈수록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허난(河南) 성 정저우(鄭州)시의 한 광장에서는 롯데그룹 계열사의 소주인 ‘처음처럼’과 롯데 음료 상품을 박스째 쌓아 두고 이를 중장비로 뭉개는 과격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롯데의 중국 철수설도 나오고 있다. 롯데는 1994년 중국에 진출한 이후 10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며 중국시장에 20년 넘게 공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22개 계열사가 진출해 120여개 사업장, 2만6000여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다. 식품 및 화학계열사인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케미칼 등은 중국 내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선양(瀋陽)과 청두(成都)에는 대형 복합쇼핑단지를 짓고 있다.
하지만, 공 들인 만큼 수익을 거둬들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롯데백화점·롯데마트는 해외사업에서 각각 830억원, 12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그 중 80~90%는 중국 사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측은 중국사업 철수설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사드 보복 이전부터 롯데의 중국 사업은 이미 적자였지만,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적자 규모가 커지므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롯데가 중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란 철수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사드보복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대응책을 마련해야할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드 불똥에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롯데측은 현재 정부 차원의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다. 중국사업에서 현지인 2만여명을 고용하고 있고 사드부지 제공이 롯데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달라는 것이다.
사드배치 후폭풍에 롯데측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어 출국이 금지돼 중국 출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수백억대 횡령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신 회장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아직 1심 심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재판이 장기화되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씨가 실소유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것과 관련 특검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또다시 검찰 수사에 불려갈 여지가 남아 있어 신 회장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데측이 마땅한 대응방안을 못 내놓고 있는 것은 신 회장의 이러한 상황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에서는 롯데 사태에 대해 민간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으므로 이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역시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성 조치들이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져 국제기구 제소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입규제와 달리 통상법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안일함과 무능함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드 배치 결정을 한 직후인 지난해 7월 19일 “한·중 관계가 고도화돼 쉽게 경제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중국의 보복은 없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최근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0월께 이미 중국의 사드보복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지난해 10월 8일 업무일지에는 ‘VIP(대통령) 지시’라는 표시 아래 정부가 외교라인을 통해 중국의 사드보복을 감지하고 WTO(국제무역기구) 제소를 검토하는 등의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논의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당시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논의할 정도로 사드보복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 같은 동향을 축소하고 반년 넘게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사실상 수수방관해온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3월 미중 정상회담 당시 "사드 한국 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한반도 내 사드배치가 발표되자 중국은 한류스타 방송출연 제한, 방한 중국인 축소 등 한한령(限韓令)으로 통칭되는 강력한 사드배치 경고를 보내왔다.
황 권한대행이 지난해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사드배치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해놓고 열흘 만에 ‘전격 배치’를 발표하는 미숙한 외교를 보여 중국측의 보복 빌미를 제공했다며 황 권한대행에 대한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사드보복이 롯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한국 기업에 대한 보복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어 우려를 더한다. 중국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은 한국산 이미지를 최소화하면서 제품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