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비즈온 이서준 기자] 홍순탁 회계사는 삼성이 합병 전에 (구)삼성물산(이하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려고 수주공사 2건을 삼성엔지니어링에 넘겨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찬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무시하면서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낮춘 회계 상의 ‘5대 미스터리’가 발견된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 뉴스 ‘오마이뉴스’에 대한 기고문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특검은 국민연금 수사과정에서 이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회계사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이재용 시대의 삼성 : 다시 삼성을 묻는다’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합병 전 삼성물산이 총수일가에 유리한 비율로 제일모직과 합병하기 위해 주가를 낮추려고 수주공사 2건을 삼성엔지니어링에 넘겼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발주한 베트남 투자 프로젝트 2차 공사의 주관업체가 작년 2월께 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변경됐다. 서울대 내 부설연구소 공사업체도 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독립적인 경영진이었다면 정상적으로 하고 있던 공사를 계열사에게 넘기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이 없었고 이건희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지분을 모두 합해도 1.4%였다”며, “이재용 일가에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면서 이런 필요에 따라 대형공사 2건을 계열사로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가치 산출에서 현금자산이 누락됐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평가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통상 기업가치를 계산할 때에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한 순차입금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합병 법인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A회계법인이나 B회계법인은 현금성자산을 기업가치 산정에 고려하지 않았다. 제일모직은 현금성 자산이 0.2조원도 안 되는데 비해 삼성물산은 당시 최소 1.8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누락됐다.
삼성물산 적정가치 보고서의 비고란에는 회계법인 2곳이 모두 현금성 자산을 누락했다고 명시했는 데도 국민연금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계산 오류를 알면서도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 외압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보유한 상장주식 평가도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합병 시점에서 삼성물산은 약 12조원 이상의 상장주식을, 제일모직은 약 4조원의 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두 합병 법인의 가치평가가 크게 달라진다.
기업회계기준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보유한 상장주식은 당연히 시장가격으로 평가해야한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은 시장가격에서 가장 높은 41%, A회계법인은 30.5%, B회계법인은 24.2%를 할인해서 적용했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100원에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는 상장주식을 59원이라고 평가해 배임 논란을 제기했다.
상장주식에 대한 할인율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합병 양사의 기업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시장가격으로 평가한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기업평가에서 8조원(12조원 - 4조원)의 차이가 나지만, 41%의 할인을 하게 되면 3.2조원(8조원 × 41%)만큼의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시장가격에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 데 따라 상장주식을 많이 보유한 삼성물산은 기업 가치가 그만큼 축소돼 불리하게 된다.
홍 회계사는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이 과대평가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민연금과 두 회계법인은 제일모직 기업가치 중에서 삼성바이오 주식을 각각 6.6조원, 8.9조원, 8.6조원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주식은 지나치게 과대 평가됐다는 지적이다. 합병 당시 비상장사였던 삼성바이오는 상장 후 현 시가총액이 10조원 정도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 주식가치는 대략 4조원 정도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제일모직 보유분을 포함한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은 43.44%인데, 여기에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과 두 회계법인은 제일모직 보유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를 현 시가로 계산한 4조원 정도보다 훨씬 많은 6.6조~8.9조원으로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
사업영역은 거의 똑같지만, 기술면에서 2년 정도를 앞서고 있다는 셀트리온에 비추어 봤을때도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는 실제에 비해 고평가됐다는 지적이다. 삼성바이오는 셀트리온과는 달리 위탁생산은 같지만, 연구개발을 자회사에 맡기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가치는 셀트리온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지난해 합병이 진행될 당시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이 10조원이었고 제일모직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율이 46%였던 만큼 4.6조원 이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홍 회계사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에서 제일모직 보유 토지가 과대 평가되고 영업가치 평가에서도 불공정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불합리한 합병 비율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당시 제일모직의 부동산 가치를 국민연금은 3.2조원, A회계법인은 1.8조원, B회계법인은 0.9조원으로 평가했다.
합병 시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보유한 토지의 장부가액은 연결기준으로 각각 8807억원과 9125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국민연금과 회계법인은 제일모직 소유 부동산을 훨씬 높게 평가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유형자산으로 분류된 제일모직의 토지 중 229만평을 비영업자산으로 찾아낸 후 별도평가를 해서 기업가치에 가산하고 회계법인 2곳도 금액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기업가치에 가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부상으로 토지금액이 비슷한 삼성물산에는 이런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두 합병 법인의 영업가치 평가에서도 심한 불공정성을 보이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의 영업가치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은 3.6조원, A회계법인은 3.3조원, B회계법인은 3.1조원으로 평가했다. 이에 비해 제일모직의 영업가치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공단은 7.0조원, A회계법인과 B회계법인은 5.8조원으로 2배 정도 높게 평가했다.
이 평가 결과는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되는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 2014년 연결영업이익 기준으로 보면 (구)삼성물산이 6524억원, 제일모직이 2134억원으로, (구)삼성물산이 3배나 수익성이 좋았다. 지난해 1분기를 기준으로 하면 차이가 더 커져 삼성물산의 영업이익이 제일모직보다 8배 높았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14년 11월 제일모직을 방문하고 작성한 자체 보고서에는 제일모직의 4개 사업부 모두 성장 정체상태에 있고 수익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제일모직에 대해서만 높은 배수를 적용한 근거도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영업가치 평가에서도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삼성물산에는 불리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홍 회계사는 이번 기고에서 "이런 5가지 오류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하게 되면 두 기업의 주당가치는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고 밝혔다. 적정 합병비율이 1대1 정도로 산출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삼성이 제안한 비율이 1대0.35인데, 국민연금공단 내부 평가가 1대1이 적정한 비율이고 외부 전문기관들의 평가도 모두 1대1 수준이라면 어느 누가 그 조건에 찬성했을까?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다. 특검 수사에서 이 부분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