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비즈온 박홍준 기자]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 수천억 원을 탕진했다.
재벌그룹 오너의 지배력강화를 위해 국민세금을 퍼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의혹의 배후에도 비선실세 최순실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정황이 짙다고 한겨레신문이 20일 보도했다.
삼성이 다른 재벌기업들과는 달리 최순실과 딸 정유라에 35억 원을 직접 지원한 데서 이런 의문이 싹 트고 있다. 이미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삼성이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뭉칫돈을 준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받기 위한 로비와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청와대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에게 압력성 전화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순실의 개입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순실이 삼성측으로부터 매월 10억 원을 송금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돈이 끊기자 삼성측에 이 돈을 송금하라고 재촉한 것은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 데 대한 대가였기 때문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설도 나돌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청와대나 보건복지부의 압력을 받아 찬성 결정을 주도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홍 전 본부장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하지만 홍 전 본부장은 이 사실을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홍 전 본부장은 조직의 일원으로 업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을 만나기 전이나 후에 무슨 일로 만나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는지를 보고하는 것은 기본 업무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뒤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의 지휘체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이 부회장을 만나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홍 전 본부장이 이사장을 제치고 이 부회장을 만난 배경에는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 국민연금 일개 본부장이 이 부회장과의 만남을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이 청와대에 부탁을 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장관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는 설이 파다하다.
홍 전 본부장의 극히 정상을 벗어난 찬성결정 과정도 의혹 투성이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전문위원회 부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관행을 깨고 독단적으로 합병찬성을 결정했다. 삼성물산 합병 건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넘어가 제동이 걸리는 것을 사전에 막자는 의도로 여겨진다.
국민연금의 통상적인 투자의결 과정을 보면 실무 부서에서 찬·반·전문위 부의 등을 일차적으로 결정해 올리지만, 삼성물산 합병 건은 실무 부서의 결정 과정을 생략한 채 투자위에 찬·반·기권 등을 물어 결정했다. 결국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12명 위원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는 전문위 부의라는 과정을 뺀 채 표결에 임해 8명의 찬성표가 나왔다.
홍 전 본부장이 투자위원회에서 찬성결정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한 인사를 했다는 대목도 드러난다. 홍 전 본부장이 청와대나 보건복지부의 압력 아래 찬성결정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홍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투자위원회 개최 10일 전인 지난해 7월 1일 단행한 인사에서 투자위원으로 들어가는 기존 대체투자실장을 다른 자리로 옮겨 투표에서 배제하고 그 자리에 모 팀장을 앉히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 팀장이 찬성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또 투자위 위원 12명 중 3명은 홍 전 본부장이 지명한 인물들이다.
그가 전문위가 기금위에서 의결권행사 권한을 넘겨 받아 의결권 권한이 있다고 밝히고는 지난해 6월 국민연금투자위를 열어 전문위를 배제한체 삼성합병안건을 자체적으로 결정했다. 결국 홍 전 본부장을 조사해 국민연금과 청와대 및 보건복지부, 그리고 최순실 사이의 검은 연결고리를 밝혀내 천문학적인 국민노후자금을 날린 데 대한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국민연금의 손해액은 최대 49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게다가 국민연금 보유 지분 가치도 합병 뒤 현재 기준으로는 5900억원이 줄었다.
재벌닷컴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11.61%)과 제일모직(5.04%) 지분 가치가 합병 전인 지난해 7월에는 2조1050억 원이었지만, 지난 17일 합병 삼성물산(5.78%) 지분 가치는 1조5186억 원으로 5865억 원이 줄었다고 최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