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각종 이권사업에 정부 입김으로 적극 나서는 치욕의 역사 반복

[데일리비즈온 안옥희 기자] 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60) 씨와 최측근 차은택(47) 씨의 인사·각종 이권 사업 개입 정황이 확인되면서 포스코와 KT가 정치권 입김에 좌지우지 되는 고질병을 또다시 드러냈다.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공통점이 있는 두 기업은 정치 외풍에 취약한 기업 구조로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와 정경유착 등으로 홍역을 앓아왔다. 이번에는 '최순실게이트'에 휘말려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 최 씨와 차 씨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포스코와 KT가 정치 외풍 속에서 자율경영 기능을 상실한 채 위기에 몰려있다.
권회장 선임과정 청와대 개입 정황…포레카 지분강탈 묵인 또는 방조 의혹
포스코의 권오준(66) 회장이 최근 검찰에 소환된 것은 포스코가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한 것을 말한다. 옛 포스코 계열 광고사 포레카 매각 과정에서 차은택 씨측에 이권을 챙겨주려던 목적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 권 회장은 지난 11일 검찰에 불려가 참고인 신분으로 12시간가량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포스코는 지난 2014년 3월 지분 100%를 가진 포레카를 매각하기로 하고 그해 말 한 중견 광고대행사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차 씨측이 해당 광고대행사 대표 한 모 씨에게 포레카를 인수한 뒤 지분 80%를 넘길 것을 협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 씨 측근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당신 회사와 광고주를 세무조사하고 당신도 묻어버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한 대표를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 씨와 송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비롯해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여기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권 회장은 차 씨측의 ‘지분 강탈’ 행태가 드러난 포레카 매각을 최종 승인한 인물로 참고인 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향후 포레카 매각 과정에서 불법 행위나 차 씨의 전횡을 묵인·방치한 정황이 드러나면 신분이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 검찰은 권 회장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권 회장을 상대로 지난 2014년 회장 선임 과정과 광고 몰아주기 사이의 상관관계, 포스코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49억 원을 출연한 것과 K스포츠재단의 배드민턴 창단 비용 요구 등도 수사하고 있어 법조계에서는 권 회장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민영화된 이후 역대 회장 선임과 정권 교체시기가 맞물려 정치 외풍에 휘말린 전례로 얼룩져 있다. 여기에 정부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포스코 전체 지분의 10.62%(9월말 기준)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라는 배경도 정치권 입김에 약한 포스코의 정경유착에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차 씨와 그 측근들의 전횡에 놀아났다는 것은 포스코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정치 외풍에 휘말렸고 여전히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이 가운데 권 회장 선임 과정에서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 회장이 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라는 점에서 자리보전을 위해서라도 정권의 압력이나 주문에 발벗고 나선 의혹을 사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지난 2013년 12월~이듬해인 2014년 1월께 최명주(60) 전 포스코기술투자 사장(현 포스코건설 부사장)을 서울 시내 한 호텔로 불러낸 비밀 회동자리에서 포스코 인사에 청와대 개입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지난 2013년 11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최 부사장에게 “차기 회장은 권오준으로 결정됐다”고 통보한 직후다.
포스코는 정치 외풍과 정경유착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됨에 따라 회장 선임 시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2006년경부터 사외이사들로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 회장 후보를 결정한 뒤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권 회장 선임 과정에 조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이어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직접 나선 정황이 포착되면서 민간 기업 포스코 인사에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포스코의 자정 노력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KT, 차은택 회사에 광고 몰아주고 청와대 낙하산 인사 임원채용도 '적극적'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변신한 KT 역시 정권 교체시기마다 대표이사가 바뀌는 낙하산 인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정경유착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된 이래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정권 교체 시기마다 사장이 교체되거나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불명예스러운 교체·중도 퇴임한 역대 수장들에 이어 황창규 회장 역시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 또다시 시련이 예고되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차은택 씨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과 공모해 KT 인사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먼저 밝혀졌다. 안 전 수석은 황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KT IMC(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문장(전무)으로 차 씨 측근 이동수 씨를 채용할 것을 추천하며, “VIP(대통령) 관심사항”이라고 강조해 사실상 낙하산 인사 청탁을 했다. 이 전무는 KT 전무 취임 후 광고 제작 관련 각종 이권사업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KT는 이 전무 취임 이후인 지난 2월~9월 사이 공개한 광고 총 24편 중 11편을 차 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회사를 통해 제작해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연루 의혹이 불거졌다. 11편 중 6편은 차 씨 회사인 아프리카픽쳐스가 제작했고 5편은 처음 차 씨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일었으나 현재는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라는 정황이 드러난 신생 광고 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가 수주해 ‘광고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다.
설립된 지 1년도 채 안된 신생 광고회사가 굵직한 대기업 광고를 잇달아 따낸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광고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차 씨가 측근인 이 전무를 KT 광고집행 업무를 총괄하는 IMC마케팅 부문 전무 자리에 앉힌 뒤 KT 광고를 독점해 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전무는 KT로 자리를 옮긴 뒤 차 씨와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플레이그라운드에 KT 광고를 대거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KT가 청와대로부터 낙하산 인사 청탁을 받고 이 전무를 영입, 이 전무를 통해 각종 이권 사업을 차 씨에게 챙겨준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황 회장의 검찰 소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취임 당시 정치적 낙하산을 받지 않겠다고 했던 황 회장의 공언은 이번 사태로 인해 무색해 진 상황이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 파장으로 인해 연임도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포스코·KT의 공통점은 '정권의 밥'…명실상부한 자율경영 해법은?
포스코에 이어 KT 수장까지 검찰 소환 가능성이 나오면서 매 정권 마다 낙하산 인사와 정경유착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며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두 기업의 비운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포스코와 KT는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대표 기업일 뿐아니라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서 지분을 각각 10.62%, 10.47% 보유하고 있는 ‘주인 없는’ 기업들로 회장 선임에 정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완전히 분리돼 있는 민간 기업이지만, 주인이 없는 기업 구조로 전통적으로 정권교체 시기마다 낙하산 인사 청탁과 정경유착 논란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황 회장과 권 회장의 연임을 불가능한 상태다.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굴해 자신이 이끄는 회사를 망친 장본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할 상황에서 연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두 회장은 나름 개혁을 통해 건전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나 뒷전에서는 정권과 비선실세에 놀아나 개혁효과는 실종되면서 부끄러운 역사를 주도하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포스코와 KT가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 등 비선실세들 손아귀에서 놀아난 정황을 두고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압에 취약한 지배구조에 대한 개혁만이 해법이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 기업 모두 정부 입김에 취약한 치명적인 지배 구조를 극복하려면 중립적인 인사들로 사외이사진을 구성하고 정부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도록 경영감시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