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규모 사채출연 약속도 8년째 ‘감감무소식’…약속 내용 다르다 이행의지 안 보여

[데일리비즈온 박홍준 기자] 이건희 회장과 삼성은 ‘삼성비자금사건’ 때 차명재산을 실명전환한 후 “누락된 세금을 낸 후 남는 돈은 유익한 일에 쓰겠다”다는 대국민 약속과는 달리 최근 성매매의혹 동영상 촬영장소인 ‘논현동 빌라’ 전세자금이 이 차명계좌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이 회장과 삼성측이 차명재산의 실명전환을 질질 끌어오고 그 과정에서 차명재산의 일부가 결코 ‘유익한 일’로 볼 수 없는 이 회장 사생활용으로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점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이 당시 국민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차명재산 등의 사재출연을 약속했지만 그 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2년 전 건강악화로 쓰러진 이후에는 아예 사재출연문제가 ‘실종’되면서 사실상 ‘허언극’으로 끝나는 상황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뉴스타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장소중의 하나로 서울 논현동 빌라를 촬영했는데, 이 빌라의 전세자금 13억 원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특별검사 수사 때 드러난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나온 것이라며 삼성 관계자가 밝혔다고 한겨레신문이 보도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인 전 삼성에스디에스(SDS) 사장이 전세 계약에 쓴 13억 원은 2008년 삼성 특검 때 밝혀진 차명계좌에서 지출됐다”고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삼성특검당시 차명재산을 지난 2014년 까지 모두 실명전환 했다고 밝힌 그는 차명재산이 아직 실명으로 전환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세금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전세금출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돈이 이 회장 개인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삼성이 특검당시 드러난 차명재산을 사건직후 즉각 실행에 옮기지 않고 6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실명 전환한 배경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는데 더해 차명재산의 일부가 이 회장성매매의혹 관련, 빌라전세금으로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점에서 비난여론이 높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4월 삼성비자금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약 4조5천억 원에 달하는 차명재산의 실명 전환한 후 세금을 내고 남는 돈은 사회에 유익한 일에 쓰고 특히 1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사재출연을 약속했다.
당시 성명에는 “특검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 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한다.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자고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민들은 삼성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는 의심치 않았다. 특히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유사한 문제로 거의 8500억 원 규모의 조에 가까운 사재출연을 성실하게 이행한 점을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이 회장이 눈물을 보이면서 한 약속의 진정성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국민 약속을 이행치 않았다. 세금을 내고 남는 차명재산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지만 그중 일부를 이 회장은 개인 사생활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실명전환도 사건이후 6년이 지난 다음에 모두 마쳐 금융실명제 이행에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차명계좌 명의인들이 실명전환 과정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삼성 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바람에 실명전환이 지연된 측면도 없지 않다.
이번에 차명계좌 돈의 일부가 부적절하게 사용된 사실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이 회장의 사재출연이 대국민약속 이후 장장 8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서도 분노한다. 도대체 이 회장과 삼성이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춘 재벌그룹인지 의심이 간다는 반응이다.
이와 관련, 삼성측은 이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 진의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이 회장이 사재출연을 약속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재의 사회기부여부는 이 회장의 개인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몇 해 전 “이 회장이 1조원정도의 사재출연을 약속한 적이 없다. 당시 세금을 내고 나서 남는 돈이 있다면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을 뿐이다. 유익한 일이 사재출연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정몽구 회장 이상의 사재출연을 예상했던 많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사뭇 달랐다. 결국 사재출연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결국 이 회장의 사재출연약속은 그가 병상에 누우면서 완전히 실종된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당시 이 회장의 ‘눈물의 약속’이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의 ‘기만극’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이 회장의 ‘불법’의 뒷받침으로 ‘이재용 삼성’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은 사재출연은 더 이상 미뤄서도, 없었던 일로 해서는 안 되며 대안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김용철 사건 당시 이 회장이 삼성SDS 헐값발행 등 편법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대국민 사재출연을 약속했고 최대 수혜자가 이재용 부회장인데 이 부회장이 이를 외면하면 누가 ‘이재용 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겠느냐”고 물었다.
한편 삼성 특검으로 드러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은 총 4조5373억 원(2007년 12월 평가 기준)으로,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486명 명의로 된 1199개 차명계좌로 관리됐다. 예금 2930억 원, 주식 4조1009억 원(삼성생명 주식 2조3119억원 포함), 채권 978억 원, 수표 456억 원이다. 당시 이 회장의 발표는 1조 원 가량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