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의 산실, 싱가포르 들여다보기
다문화의 산실, 싱가포르 들여다보기
  • 고승화 지역전문가
  • 승인 2019.08.28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 삶을 들여다 보다
- 민족, 종교, 언어 등 다양한 문화 속 절묘한 균형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경 (사진=pixabay)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경 (사진=pixabay)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 안에 인구 586만이 살아가는 도시국가. 간척사업으로 영토 크기를 늘려도 작은,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는 많은 색들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 하면 거대한 배를 얹어놓은 듯한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호텔이나 사자와 물고기가 합쳐진 듯한 머라이언(Merlion)등 다양한 관광명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나라의 진국을 맛보려면, 그 문화를 보아야한다. 싱가포르는 진정한 Salad Bowl(다양한 문화가 한데 모여 있음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언어로 다양한 문화를 꾸리고 사는데, 주 문화에 다른 문화가 녹아들기보다는 각각의 맛이 살아있다. 이 나라에는 어떤 색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 역사

싱가포르도 처음부터 모든 인종이 갈등없이 사회로 녹아들 수 있던 것은 아니다.이 나라의 다문화를 보려면 그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도를 보면 사실상 말레이시아에 속한 작은 섬 같다. 실제로 역사를 거슬러 보면,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영토에 속했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의 원주민은 말레이시아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의 식민지 등을 거치면서 많은 화교들이 자리잡게 된다.

분명 말레이시아의 영토인데 똑똑하고 시장에 밝은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오니, 원주민인 말레이시아인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인을 우선적으로 대우하는 부미 푸트라(Bumi Putera) 정책을 도입하고, 화교와 말레이인 사이에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계와 말레이계 사이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여러 정치적인 부담을 느낀 말레이시아 연방은 싱가포르에게 독립을 떠안기 듯 줘버린다. 말레이시아인과 화교 외 인도, 중동, 동남아시아인들이 이미 존재한 상태에서 싱가포르의 독립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다문화정책은 자연스럽게 싱가포르의 주요 맥락일 수 밖에 없다.

◆ 인구와 언어

싱가포르 지하철 속 시민들 (사진=pixabay)
싱가포르 지하철 속 시민들 (사진=pixabay)

현재 싱가포르의 인구 구성을 보면, 중국계가 76%로 압도적으로 많고 말레이시아계가 17%, 인도계가 7% 등으로 뒤를 잇는다. 워낙 다른 민족들이 모여 살다 보니, 지하철이나 표지판을 보면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이 4가지 언어가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다. 싱가포르 헌법상 국어(National Language)는 말레이어이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1언어(First Language)는 영어이다. 각 가정에서는 모국어(Mother tongue)를 통해 뿌리를 지키기 때문에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도 꽤 많이 들을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영어를 선택한 싱가포르 정부는 영어로 공교육 수업을 진행한다.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영국식 영어와는 꽤나 거리가 있다. 싱가포르의 영어를 싱글리쉬(Singapore와 English의 합성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콩클리쉬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어와 말레이어의 독특한 뉘앙스와 그들만의 슬랭(Slang, 은어)이 대단하기 때문에, 싱가포르만의 영어를 구사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 정부는 영어를 기본으로 하지만, 모든 모국어 수업을 공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다. 언어를지킨다는 것은 그 문화와 뿌리를 지킨다는 뜻인데,이런 의미에서 다문화를 잘 아우르는 싱가포르 정부의 능력을 볼 수 있다.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언어는 아무래도 중국어인 듯 하다. 동북아인을 보면 당연스럽게 중국어를 던지니, 얼마나 중국인과 중국어가 싱가포르 사회에서 다수인지 느낄 수 있다. 젊은 세대는 공교육을 통해 편안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반면 기성세대는 아직 모국어 중심적이다. 따라서 모국어를 잊고 영어만 쓰는 젊은 세대를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양한 언어들이 싱글리쉬라는 교집합을 가운데 두고 톱니바퀴처럼 사회를 굴려 나아간다니, 참 신기한 나라다.

◆ 지역과 종교

싱가포르의 절에 있는 부처상 (사진=pixabay)
싱가포르의 절에 있는 부처상 (사진=pixabay)

워낙 많은 인종이 살다 보니 이 작은 나라에도 나름 문화 별 상징적인 지역들이 있다. 이름부터알기 쉬운 리틀 인디아, 차이나타운, 아랍스트릿 등에서 특정 문화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종들이 함께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데, 구역 내 인종비율을 유지하는 ‘HDB 인종쿼터정책’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HDB는 우리나라의 주택공사와 같은 개념으로, 주공아파트에 해당하는HDB아파트가 싱가포르 주택문화의80% 이상을 차지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주거정책에 다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특정 구역에 특정 인종 집단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쿼터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인종이 다양한만큼 종교도 다양하다. 불교33%, 이슬람15%, 기독교18%,도교10%, 힌두교 5% 등 길을 거닐다 보면 모스크, 교회, 절 등이 한 블럭 안에 공존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HDB 내부를 보면 간혹 특정 종교의 작은 신당도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에 따른 음식문화도 잘 발달되어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본인 종교에 맞는 음식점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 따라 공휴일도 적절히 배분되어 있어, 서로가 서로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듯 하다.

◆ 어두운 면

여러 문화가 어울려 돌아가는 싱가포르. 하지만 싱가포르의 다문화를 이해할 때 밝은 면만 보고 그 이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적주의 위주의 이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나, 싱가포르의 모든 인종이 평등하게 대해지지는 않는다. 우선 인도네시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에서 아주 값싼 노동력이 싱가포르로 유입되는데, 이들에 대한 하대와 ‘갑질’은 언론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싱가포르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싱가포르인들은 값싼 주변국가로 휴가를 쉽게 가는데, 이 때에도 선진 국민의 은근한 우월주의를 엿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사회적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갈등이 같은 사회 내에서 다른 민족과 다른 언어, 다른 문화 간 발생한다면, 해결방안을 위한 셈법은 늘 골치 아프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싱가포르는 상당히 성공적인 모델인 것 같다. 이것은 싱가포르의 독특한 조건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작은 영토, 적은 인구, 그리고 통제가 강한 사회. 하지만 다문화 사회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우리가 배울 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포용이든 존중이든.

글: 고승화
코스타리카UN평화대학원에서 지속가능개발과 국제평화학을 전공했다. 싱가포르의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