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논란에도 반성 없는 업계에 성토 이어져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지난 2월 흑인 얼굴을 형상화한 스웨터로 인종차별 비판을 받았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석 달 만에 종교 비하로 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가 된 구찌의 ‘인디 풀 터번’은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파란색 헝겊으로 만들어진 이 터번의 가격은 790달러(약 94만 원)이다. 시크교도연맹은 “구찌가 신앙의 상징인 터번을 가지고 돈을 벌려 한다”며 “구찌는 시크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그동안 겪은 수많은 차별과 수난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터번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러 종교에 걸쳐 많은 문화에 의해 착용되어 왔지만, 터번을 쓰는 시크교의 관습은 인도에서 유래되었다. 구루(Gurus)라고도 알려진 시크교의 지도자들은 사회적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터번을 저항의 행위로 채택했다. 구루 고빈드 싱의 명령에 따라, 시크교 종교의 추종자들은 모든 사람들의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위에 터번을 두르기 시작했다.
시크교 카뮤니티의 일부 구성원들은 구찌와 노드스트롬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없이 같은 스타일의 터번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은 문화적 전용의 노골적인 예라고 주장했다. 문화적 전용이란 대체로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나 관심 없이, 그들이 대표하는 이미지만을 차용해 돈벌이에 이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논란이 일자 해당 제품을 판매하던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종교, 문화적 상징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었다”고 사과하면서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나 구찌는 시크교도연맹의 사과 요구에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찌는 지난 2월엔 무늬 없는 검은색 옷에 입술 모양만 붉은색으로 강조한 스웨터를 내놓았다가 흑인을 모욕하는 ‘블랙페이스’(백인 배우가 흑인을 흉내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 논란을 일으켰다. 구찌는 흑인 연예인들이 앞다퉈 불매운동을 선언하는 등 여론이 나빠지자 그제서야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뒤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패션업계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일으킨 것은 구찌 뿐만이 아니다. 2월 아디다스는 ‘흑인 역사의 달’을 기념한다면서 순백의 운동화를 출시했고, SPA 브랜드 H&M은 지난해 흑인 어린이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쿨한 원숭이’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혔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지난해 중국인 여성이 젓가락으로 우스꽝스럽게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모습의 광고를 선보였다가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에 3월 뉴욕포스트는 구찌의 블랙페이스 스웨터와 관련해 패션계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비판한 바 있다. 패션계가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논란을 일으킨 이들에 대한 처벌이 대체로 부재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곤 한다. 2011년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가 과거 히틀러를 찬양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디올에서 쫓겨난 것이 그나마 제대로 된 징계였다. 하지만 갈리아노도 2년 뒤 다시 복귀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