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화의 경제학] ⑨ 남아공의 분권화는 효과적이었나?
[분권화의 경제학] ⑨ 남아공의 분권화는 효과적이었나?
  • 박종호 기자
  • 승인 2019.04.29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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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개헌과 함께 연방제 도입
-백인 기득권 유지하기 위한 분권화
-분권화가 소득격차 심화시켜
(왼쪽)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 전용 시설임을 알리는 간판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포스터. (사진=Order Provincial Secretary)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1990년 감옥에 갇혀있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며 흑백차별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어, 1994년 대통령중심제와 연방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어,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이후로 표면적인 인종차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달라진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내용은 남아공이 이제는 ‘연방국’이 될 것임을 공표했다는 것과, 이에 상응하는 자치권이 각 지역에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세계적인 정치학자인 아렌드 레이하르트를 비롯해 다수는 당초 남아공이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국가가 정상 기능을 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았다. 이에 신속하게 개헌을 통해 흑백간의 갈등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잠재운 것도 놀라웠지만, 일각에서는 그 방법이 연방제 채택과 분권화였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연방 시스템은 애초에 자치권 분배를 통해 까다로운 지방정부나 소수민족의 갈등을 유화시키려는 제도적 방책으로,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세계 각국에서 시도되었다. 최근에는 2008년 이라크가 후세인 사후 각 종파에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형태의 민족국가 연방체를, 몇 년 전부터는 네팔이 연방제 도입을 통해 수백 수천에 이르는 민족들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남아공에서도 목적은 비슷했다. 인구구조상 절대다수인 흑인과 사회경제적 자원을 독점하고 있지만 수가 적었던 백인간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이었다. 중앙 권력에서 경제권을 독차지하는 백인들은 자원을 지방에 분배하는 분권화가 필히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공의 지방정부는 현재 어느 국가 부럽지 않은 재정자립도와 정치, 행정적 권한을 갖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 기득권 유지하려는 시도가 분권화 만들어내

런던대(SOAS)의 메튜 넬슨 교수에 따르면 “남아공의 백인 엘리트들은 흑백차별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국내외로 높아지자, 기득권을 최대한 유지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한다. 거기에 따른 해답이 곧 분권화라는 것이다.

그들은 핵심적인 수도였던 요하네스버그와는 물리적으로 다소 떨어진 서케이프타운에 밀집해 살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본격 도입된다면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이전처럼 정권을 잡기는 힘들어질 것임은 분명했다. 흑인이 80%에 달하는 반면, 백인은 전체 인구 구성에서 10%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이 차선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 분권화였다.

서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지방정부에 상대적으로 큰 권한을 부여하자는 그들의 안은 곧 비밀리에 만델라를 중심으로 한 흑인 지도부와의 협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서케이프타운은 당시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히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고,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동아시아계 중 일본계, 대만계, 홍콩인들 역시 명예백인으로 준 백인대접을 받아 백인 지역에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한국계들의 증언으로 “당시 서케이프타운은 유럽의 선진국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잘 사는 지역에 변함없이 가장 많은 세금이 쓰여질 것이라는 현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흑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 보고서에 의하면 협상은 의외로 별 잡음 없이 타결되었고, 이는 ‘분권화된 연방국’으로서의 새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권 교체 과정에서의 결과도 양 측에 만족스러웠고, 과정 자체도 이례적일만큼 평화로웠던 셈이다. 그러나 세심한 고민과 설계 없이 건축된 분권화의 결과는 흑인들에게만 가혹했다.

◆ 분권화가 불평등 심화시켜

넬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전까지 백인들의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 두 곳이 차지하는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된) 예산은 전체 대비 절반이 넘었다. 백인 인구는 약 8%에 불과한데 이들이 사는 지역은 분권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의 절반을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양상은 현재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분권화가 가진 딜레마이기도 했다. 워낙 못사는 지역에 세수 보조를 조금 해 준다고 지역주민들의 삶이나 경제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날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력한 권한을 지닌 중앙정부가 빈곤지역에 대규모 예산투입을 통해 팍팍 밀어줘야 그나마 효과를 좀 보는 경우가 대다수이기도 했다.

흑인들의 경제력 신장을 대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던 ‘BEP(Black Empowerment Plan)’을 대표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1995년에 백인들과 흑인들의 소득차는 4:1이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종결 6년 이후인 2000년의 호구조사에서는 6:1로 오히려 벌어졌다. 21세기의 첫 10년간 흑인 중산층(일명 블랙 다이아몬드)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백인과 흑인간의 빈부격차가 심한 상태라는 것이 중론이다.

2011년 남아프리카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8000달러인데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25%가 하루 1.25달러 아래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으로 치면 한국 국민의 25%가 하루에 4000원도 못 쓰는 수준이다. 그 대부분이 흑인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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