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방조한 파라과이의 ‘수자원 자본주의’
국가가 방조한 파라과이의 ‘수자원 자본주의’
  • 박종호 기자
  • 승인 2019.03.09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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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수자원은 풍부하지만 깨끗한 물은 귀해
-방만한 공공기관 운영과 사기업의 도덕불감증이 빚어낸 결과
-거버넌스의 실패…한국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의 전경. (사진=아순시온관광청)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파라과이 사기업의 수도 요금은 8000리터당 2만2000과라니(약 4500원)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파라과이수자원공사(ESSAP)가 관리하는 수도 요금보다는 2배나 비싸다. 파라과이의 주민 대부분은 사기업에서 관리하는 수도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수돗물의 수질은 도저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파라과이의 한 주민은 작년 9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돗물에 붉은 모래가 섞여 있을 때가 많아요. 전 아이가 두 명 있는데, 절대 이 물을 못 마시게 해요. 수질을 믿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수도세는 계속 오른다. 그는 매달 150유로(약 19만7000원)밖에 벌지 못하지만, 항상 집에 20리터짜리 생수를 사다 놓는다. 수돗물보다 180배 이상 비싸지만, 적어도 병균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보통 지하수는 지표수보다 오염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관리가 부실하다. 수돗물을 검사하는 검사관은 보통 1년에 한 번 꼴로 온다. 그들에 의하면 연중 아예 오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민간 연구소에 돈을 주고 수질검사를 의뢰한다. 

◆ 깨끗한 물이 귀한 파라과이 

1980년대 초, 인구급증과 이농현상으로 ‘물 공급’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민간기업의 물 공급량은 현재 전체 대비 3분의 1을 차지한다. 사측 입장에서는 원재료가 무료인 데다가, 자주 관리할 필요도 없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수질검사를 거의 하지 않은 물을 수도망이 닿지 않는 지역에까지 공급했다. 수도 아순시온에 전체 인구의 70%가 사는 현실을 고려하자면 대단히 의아한 일이다.

반면, 파라과이의 연간 1인당 물 공급 가능량은 6만 7000㎥로(지표수만 포함) 남미 평균인 2만 200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남미 내에선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북부 차오 지역과 동부지역, 도시와 시골, 부촌과 빈촌 등 수자원의 지역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수자원 관리의 취약함 때문에 국민의 약 4분의 1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국민의 약 절반은 정화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 살고 있다. 

반면 파라과이 수자원을 관리하는 공공기관들은 너무 많다. 공기업인 파라과이 수자원공사는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에 물을 공급하고, 환경위생청(SENASA)은 1만 명 이하의 도시를 담당한다. 환경위생청의 경우, 2500개의 ‘시민 감시반’이 있는데 대개는 물 정화 및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감독한다.  

파라과이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공권력이 약해서 관리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공공 수도망이 전국에 깔려있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한 공무원은 “시민 감시반들은 지자체들의 정치적 논리에 밀려 물질적, 재정적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결국 민간기업들과 손을 잡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공무원에 따르면 파라과이 수자원공사가 아순시온에 공급하는 물은 정기적인 수질관리와 신뢰할만한 정수처리 시스템을 거친다. 반면 이외의 다른 공급처들은 남모르게 우물을 파고, 자신들은 절대 사지 않을 물을 판매한다. 수질검사도 “3개월에 1회면 그나마 자주 하는 편이다”는 제보도 있다. 파라과이의 물은 누구에게도 신뢰받지 못한다.

파라과이 수자원공사로부터 제공되는 물을 수령해가는 아순시온 시민들. (사진=ESSAP)

수도 아순시온이 위치한 센트랄 주에는 약 1000개의 우물들이 보이지 않는 공장굴뚝처럼 깊게 파여 있다. 1000개의 우물 주위에는 파라과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만 명이 거주하고, 전체 공장의 70%가 몰려있다. 이 곳 지하수는 그 깊이가 얕기 때문에 “재생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기적으로 내리는 빗물이 지하수를 다시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나 물의 순환이 생각만큼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지하수의 상태도 악화됐다.

환경청에 의하면, 지하수 수위가 매년 5cm씩 낮아지고 있다. 이 속도대로라면 아순시온도 멕시코의 뒤를 이어 남미 지반침하 위험지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멕시코는 현재 지하수 과잉 취수로 지반이 침하될 위기에 놓여있다.  

물 자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수도 아순시온 일대의 주유소에는 기름을 가득 채운 손님에게 인심 좋게 생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는 주유소가 상당히 많은데, 반면 부식된 저수조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되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017년 아순시온국립대에서 주유소 1000m 반경의 우물 90개를 조사한 결과, 44%의 우물에서 휘발유 첨가제인 메틸터셔리부틸에테르(MTBE)가 검출되기도 했다. 

파라과이의 한 농민. (사진=파라과이투자청)
파라과이의 한 농민. (사진=파라과이투자청)

파라과이의 ‘물 불평등’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항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역시 파라과이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물 부족' 사태를 9월 호 특집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 바 있다.

르몽드의 특파원 기욤 보랑드에 따르면 파라과이의 농민들은 여름이 끝날 때쯤에 수확과 파종을 하려면 하루에 두 번씩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고 전한다. 오염된 우물 물 때문에 면역 체게를 갖추지 못한 아이들이 아픈 것은 일상인데, 안타깝게도 대안은 없다. 반면 비옥한 땅의 토지와 물을 뺏으려는 전쟁은 진행 중이다. 이중 등록된 부동산등기를 무기삼은 콩밭 대지주와 농민들 간의 분쟁은 일상이 되었다.

◆ 생수회사들은 신이 났다 

이 틈에 득을 본 것은 생수업체들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포장생수의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라서 생수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 시기에 보틀링(물을 용기에 담는 공정) 공장들은 내륙 안쪽으로 이전해야 했고, 이 때문에 강물 처리공정 비용이 상승했다. 그러나 지하수의 오염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지하수에 독성물질인 질산염 농도가 평균수치보다 2.5배 높게 나타나고, 하수집하·처리장 낙후 때문에 대장균이 검출된다. 10년 전부터 수도 일대의 지하수의 오염상태가 심해지고 있다는 연구들이 속출했다.
 
불안이 확산되는 분위기를 틈타 생수회사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파라과이 마트 진열대에는 생수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지하수에서 뽑아낸 수억 리터의 물들을 정수처리한 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고가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청정한 지하수”에서 바로 뽑아 올렸다고 광고하더니, 지금은 “양질의 정수처리 기술”을 앞세운다. 국민들은 공공 수도망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위생당국은 자꾸 지하수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됐다고 발표하는 상황이라서, 브랜드 생수업체들이 더욱 득을 본다. 

코카콜라의 생수브랜드 다사니의 시장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오라시오 카르테스 대통령가문이 소유한 그룹의 생수브랜드는 150개가 넘는다. 파라과이 생수상공회의소(CAPAM)에 의하면, 2016년 생수산업 규모가 6190만 달러였으며, 2017년 총매출이 전년 대비 평균 20% 증가했다. 그러나 이 모든 브랜드들이 철저히 관리되는 브랜드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2017년 11월, 파라과이 식품안전청(INAN)은 위생허가 등록을 하지 않은 26개 생수브랜드를 적발했다. 

농업은 오염된 지하수의 1차 피해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부가 발표한 파라과이의 물 소비 형태를 살펴보면, 가정이 10%, 산업이 20%인 반면, 식품업 및 집약농업이 70%를 차지한다. 특히 식료품 생산에 사용되는 물 추정치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다. 파라과이는 세계 4위 콩 수출국이다. 콩 1kg을 생산하는데 물 1800리터가 필요하다. 2016~2017년 생산량이 사상 최고치인 1060만 톤에 달했으니, 약 200억㎥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이는 프랑스 연평균 물 소비량(330억㎥)의 3분의 2에 달한다. 

코카콜라의 생수 브랜드인 다사니(왼쪽)은 파라과이 생수시장 점유율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유력 업체이다. (사진=연합뉴스)
코카콜라의 생수 브랜드인 다사니(왼쪽)은 파라과이 생수시장 점유율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유력 업체이다. (사진=연합뉴스)

◆ 거버넌스의 실패

상술했다시피, 수자원 자체는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그들은 수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제도도, 인프라도 부족하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거버넌스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지방정부의 부정부패도 일상적이다. 국가재정 배분을 포함해 국가의 정책개발 및 수행능력을 고려하면, 국민의 요구를 충족해준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한 때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물 부족 국가’의 오명을 쓴 적이 있다. 제주도는 아직까지 안심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마시고 생활하는 모든 물을 지하수에 100% 의존하는데, 최근 제주의 지하수위가 관측 이래 최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도 관계자는 최근 제주가 지하수위가 낮은 분포를 보이는 것은 강수량의 문제가 크다고 분석한다. 2018년 1월부터 11월 제주의 누적 강수량이 전년 대비 71%, 평년 대비 77%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이와 함께 인구와 관광객 증가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규모 관광개발사업도 잇따르면서 제주의 물 사용량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만이 문제일까. 제주도에서 지하수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도개발공사다. 2017년 한해 사용량은 105만 톤으로 지하수 사용 요금만 51억4481만 원에 달한다. 이어, 제주공항 45만790톤(3억6567만 원), 공판장 35만4768톤(1억4767만 원), 모 호텔 29만7146톤(1억9374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6곳은 모두 골프장이 차지했다.

지하수 사용 상위 6개 골프장의 사용량은 243만3436톤으로 요금은 29억105만 원이다. 원수대금은 업종과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상수도보다는 저렴하다. 더군다나 2015년 5월 도시계획조례가 개정되면서 주민들이 지하수를 이용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지하수의 수질 악화도 동시에 대두되는 문제다. 제주시의 한 아파트의 경우 지하수 수질이 나빠져 지하수 취수를 중단하고 상수도를 공급 받는 시설공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상수도 역시 누수율이 높아 효율은 더욱 악화된다. 땅으로 스며들어야 할 물들이 각종 개발로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면서 지하수 수위를 더욱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역시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관리계획 마련이 절실하다. 소득의 2~30%를 물 구매에 사용하는 아순시온 주민들의 사례를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파라과이의 생수 업체들 역시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지만, 주민들은 그 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은 언제고 가까운 시일 안에 되풀이될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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