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비즈온 이서준 기자] 금융감독원이 본인 소유 주식을 그룹 임직원 명의 차명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뒤늦게 실명 전환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 대해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고 단순히 '경고'조치를 한 것은 그야말로 ‘봐주기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나 증권투자자들은 증시에서 공정한 거래를 감독하고 감시해야할 금감원이 이 회장이 한 두 차례도 아니고 그것도 거액에 이르는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온데 대해 이같이 경미한 처벌을 한 것은 증시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이 회장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는 많은 상장사들에 대해 주식의 차명보유에 대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상장사 대주주들 중 이미 상당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 처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현재 차명주식이 없는 일부 대주주는 앞으로 필요에 따라 보유주식을 차명으로 전환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 강정민 연구원은 16일 금감원의 이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의 적정성에 대해 “이명희 회장의 차명 주식 보유가 처음이 아닌데다, 증권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엄중한 제재가 필요했다”며 “금감원이 사실상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경고로 마무리하면서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 일게 됐다”고 꼬집었다.
금감원은 이 회장의 차명주시보유에 대해 ‘임원·주요주주의 주식 소유 상황 보고 의무 위반한 공시의무 위반혐의 적용했다. 공시 위반은 일종의 불공정거래 행위로 ‘주의→경고→과징금→검찰 통보 및 고발’ 등의 행정 조처가 가능하지만 금감원은 이 회장에 가장 경미하다는 경고조치에 그쳤다.
금감원측은 이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주식은 전체 지분의 1%에도 못 미치는데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이거나 주가 조작 등에 이용되지 않아 내부 규정에 따라 경고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경고 조처는 금감원장의 권한이어서 상급기관인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이를 외부에 공표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차명주식은 비율 면에선 적지만 금액으로 보면 거의 900억 원에 가까운데다 이 정도 물량이면 증시에서 주각 조작 등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이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상당수 재벌기업들이 3% 안팎의 보유주식으로 순환출자 등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데 차명주식 1%는 경영권방어측면에서 결코 적은 물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이 회장 등의 공시 의무 위반 여부를 조사해왔다. 앞서 이 회장은 국세청 조사에서 약 800억 원어치의 차명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돼 지난해 11월 약 700억원의 추징금을 통보받은 바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금감원 제재심의실은 이명희 회장과 구학서 고문의 공시 의무 위반 여부를 심의해 경고로 결론 내린 뒤 지난달 초 두 사람에게 이를 통보했다. 나머지 임원에게는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차명 주식은 이명희 회장이 실소유주지만 구학서 고문과 석강·이경상·최병열 등 전 경영진들이 보유한 것처럼 공시해오던 것으로 신세계 9만1296주(0.92%), 이마트 25만8499주(0.93%), 신세계푸드 2만9938주(0.77%) 등 총 37만9733주다. 차명으로 주식을 보유한 탓에 이 회장과 전 경영진 모두 대주주와 임원으로서 주식 소유 상황을 허위로 보고했고, 신세계와 이마트·신세계푸드 등도 사업보고서에 잘못된 정보를 알려왔다. 이들 주식 가치는 이 회장이 실명 전환했다고 공시한 지난해 11월6일 종가 기준으로 828억 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