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 전문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는 2018년에 프리미엄 피트니스 클럽인 ‘블랑슈(Blanche)’를 ‘우리가 가장 땀 흘리고 싶어하는 공간’이라는 찬사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섹시한 클럽으로 선정했다.
세련되고 우아한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블랑슈는 이른바 오페라 구(Arrondissement de l'Opéra)라 불리는, 파리 9구의 저택에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는 블랑슈가 럭셔리 피트니스클럽의 선구자 벵자캥(Benzaquen) 일가가 가장 최근에 개장한 클럽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정면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 기둥, 볼록거울, 프레스코화 및 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장식물과 최신식 디자인이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고집은 뱅자케 일가의 2009년 설립한 '클레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클레이와 블랑슈의 공통점은 회원 수를 2500명으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물론 연회비도 있다. 블랑슈의 경우 1810유로(한화 약 234만 원)를 요구한다. 반면 벵자캥 일가의 초기작 ‘켄(Ken)’는 연 4400유로(한화 약 573만 원)다. 1985년에 개설된 나름 역사가 있는 클럽인데다가, 충성심 높은 상류층 회원들이 많은지라 신규회원을 수용하기가 더 까다롭다는 것이다. '상위 0.5%에게는 저가 클럽. 중산층에게는 프리미엄 클럽'의 양가성을 추구하는 네오니스(Neoness)는 오후 시간 한정으로 120유로(약 15만 원)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흔히 블랑슈와 클레이의 '고급스러운’ 장식에 주목하곤 한다. 클레이에서는 메탈 소재로 마감한 들보, 대형 유리창, 첨두홍예를 십자형 벽돌로 장식한 천장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시설은 벵자캥이 ‘명상의 동굴’이라 일컫는 인피니티 풀이다.인피니티 풀은 수영장의 물과 주변이 경계가 없는 듯 보이게끔 설계한 수영장이다. 화강암으로 가장자리를 마감한 풀 안에는 스파가 장착돼 있고, 자연 채광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벵자캥은 “무중력상태에 있는 것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보면 몸에 힘 빼기가 쉬워지고, 더 깊은 심호흡이나 호흡정지 등의 훈련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은 사진이 가장 멋지게 나오는 포즈로 유명하다. <베니티 페어>역시 블랑슈를 소개한 기사의 ‘포텐셜 인스타그램’ 코너에서 이 수영장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트립어드바이저나 현지의 매거진 역시 늘 상류층 관광객들을 클레이로 끌어들이면서, 이 곳이 피트니스와 스파(SPA)가 결합된 공간이라는 점을 어필한다.
벵자캥 역시 수차례 언론을 통해 “우리는 유행을 뒤쫓지 않는다. 유행을 규정하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내곤 했다.
◆ 프리미엄 피트니스클럽의 성장...불모지였던 프랑스 휩쓸어
클레이나 블랑슈 같은 고급 피트니스클럽이 성장하면서 과거의 헬스클럽은 이제 스파, 헤어숍, 바,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복합 커뮤니티’에 자리를 내줬다. 사람들은 이제 칼로리를 소모하러 이곳에 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을 하거나 사업상 미팅을 잡기도 한다. 이 곳의 레스토랑은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랑슈는 스카이라운지에 작은 영화관을 갖춰놓고 있고, 클레이에는 읽을거리나 예술작품이 구비돼 있다.
한편, 블랑슈의 라이벌, ‘위진’은 문화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을 거부한 체 순수한 스포츠클럽’을 고집하고 있다. 위진의 설립자 파트리크 리초와 파트리크 졸리는 2004년, 오래된 페캉 정유공장 작업장에 개장한 오페라극장 지점을 시작으로 스포츠클럽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오페라극장 지점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두 번째 지점은 보부르에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건물은 18세기 초 존 로(John Law,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은행가)에게서 압류한 은행 건물이기도 하다.
파트리크 리초는 현재 쇼비즈니스와 스포츠클럽의 결합을 갈망하고 있다. 그 예로 리초는 유명 셀럽들을 위진에 초대하는 데 아주 열심이다. 테니스 스타인 로저 페더러와 같이 비(非)프랑스인 스타도 많지만, 때론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도 프랑스에 들를 때 위진을 방문하곤 한다. 최근에는 킴 카다시안과 카니예 웨스트가 파리에 왔을 때 위진을 찾았고, 몇몇 로컬 매거진에 떠들썩하게 보도되기도 하였다.
2017년 스포츠클럽에 가입한 인구는 독일 13%, 영국 14.7%, 미국 17.5%였으며, 프랑스의 경우 8.5%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의 스포츠클럽 시장은 몇 년 사이 대도시에서 급성장했다. 리초는 최근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위진 오페라극장 지점을 개장했을 때 파리에 있던 클럽은 20개 남짓이었다. 현재는 300개에 달한다”고 강조했다.딜로이트 회계감사 및 자문법인’은 프랑스의 스포츠클럽 종사자 수를 2017년 약 5700만 명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2016년 대비 4.7% 늘어난 수치다.
◆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아닌, 차별화된 운동법 제공이 핵심
스포츠클럽이 탄생한 이후로 상류층들의 운동법은 점점 정교해졌고, 동시에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블랑슈 같은 곳은 요가나 주짓수 같은 동양식 훈련법을 강조한다. 반면 위진은 마치 영화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에나 나올법한 미군식 신체 단련식의 마초적 분위기를 선호한다.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각 스포츠클럽은 각자의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다양한 운동법을 제시한다. 이들보다 '럭셔리함'에 있어서는 몇 수 아래인 네오니스도 40개가 넘는 운동법을 선보이고 있다.
저가 스포츠클럽들이 기본 강좌들을 제공하기 위해 줌바댄스, 바디펌프, 쉬뱀(Sh'bam) 등의 라이선스를 사들였다면, 고급 클럽들은 특허기술들을 독점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자기들만의 고유한’ 경험을 제공한다.
뉴욕에서 반중력 피트니스(Antigravity fitness)를 도입한 클레이에서는, 기구를 이용해 머리를 아래쪽으로 하고 공중에 매달려 하는 요가를 경험할 수 있다. 위진의 ‘U 스트레칭’은 근육 내 체온을 상승시켜주고, 신체의 서로 다른 조절 시스템에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클레이의 ‘호흡과 스트레칭’은 지압과 정신집중효과학을 혼합한 요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복싱요가’처럼 때로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운동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반면, 영국의 유서깊은 헬스클럽인 데이비드 로이드 클럽은 최근 침대에 누워 45분간 잠만 자면서 살을 뺀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잠을 운동의 일부로 인식하는 ‘상식 파괴’를 시도한 것이다. 낮잠(nap)과 운동(exercise)의 합성어인 '네퍼사이즈(Napercise)'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헬스장에서 잠을 자면서 건강을 관리한다.
물론, 돈 내고 낮잠 자는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마냥 자는 것만은 아니다. 15분간 스트레칭 후 이상적인 기온에서 음악을 들으며 쾌적한 수면을 취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약 50kcal의 열량을 소모한다.
이에 대해, 프로그램 개발자는 “잠이 부족하면 불안감과 우울증이 유발되므로 최적의 잠을 통해 몸과 마음의 활력을 찾고 칼로리를 태우는 운동법"이라며 "헬스장에 침대를 놓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많은 스포츠클럽이 이 프로그램을 따라 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 헬스클럽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
반면, 한국의 헬스클럽 시장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는 시각이 많다.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가 최근에는 신축되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주거용 피트니스클럽이 빠지지 않고 제공되는 터라, 시장규모가 점차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은 송파구의 한 피트니스 클럽의 트레이너는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해당 트레이너는 "이 곳 피트니스는 회원수가 5000명에 달하고, 일반 회원의 한 달 회원료도 20만 원에 달한다"며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간과 대우가 업계에선 상위권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1급 트레이너들의 처우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분명히 부족한 수준"이라며,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국가대표급의 경력이 있거나, 국제 피트니스·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자들은 대개 메이저 피트니스클럽에서 경력을 쌓고 독립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밝혔다.

고령화 사회나 주 52시간 인해 헬스케어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해도 트레이너 각자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밝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독립도 요새는 쉽지가 않다. 구매력이 있는 분들은 규모가 크고, 사우나나 샤워 시설이 잘 비치된 공간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PT 위주의 트렌디한 소규모 피트니스 클럽도 트레이너 개인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고, 그렇지 않다면 타겟 고객 특성상 임대료가 높은 주요 상권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도시 등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상권 역시 거주용 피트니스 공간의 확대로 신규 시장 진입이 어렵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낙관적인 분석도 있다. 미국의 창업 전문잡지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가 발표한 ‘2018년 프랜차이즈 랭킹 500대 기업’을 보면 플래닛 피트니스(Planet Fitness), 요가웍스(YogaWorks) 등 헬스클럽 20개가 올라 있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 가운데 하나 역시 헬스 트레이너다. 이 기관은 다른 직종과 달리 헬스 트레이너의 수입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두 가지를 묶어 해석하면 헬스클럽은 다른 업종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할 업종임을 가늠하게 한다.
이에 여러 비즈니스 연구진들은 헬스클럽의 현대적 진화로 헬스와 재미를 융합한 엑서테인먼트(Exer-tainment)형 모델을 제안한다. 1990년대 초, 미국의 게임장비업체인 밸리 매뉴팩처링(Bally Manufacturing)이 헬스클럽 와일드맨(Wildman)을 인수해 처음 선보인 바 있다. 이 모델은 DDR을 개발한 일본 코나미사가 미러링(Mirring)해 ‘코나미 스포츠클럽’으로 거듭났다. 요즘 유행하는 스피닝(spinning)이 대표적이다.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노래, 춤 등을 결합해 즐길 수 있는 운동법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마치 게임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암벽타기 '클라이밍'도 서울의 대형 피트니스를 중심으로 도입을 고려중에 있다.
◆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피트니스 클럽도 현대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
전문가들은 "의외로 한국의 피트니스 산업은 보수적인 측면이 많다"며, "미국이나 최근의 프랑스처럼 획기적인 사업모델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아쉬워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늘 새로운 운동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프랑스는 자본력으로 상류층에게 어필함과 동시에 각자만의 방식으로 적용·진화시킨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에 한국시장에 어울리는 공유플랫폼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클릭앤모타르(click-and-Mortar)가 대표적인 헬스클럽 공유플랫폼 모델이다. 우버는 택시회사를 소유하지 않으며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이 없듯이, 클럽(Club)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플랫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종의 콘도미니엄 시스템으로 보면 된다. 선도 플랫폼은 미국 ‘클래스패스(ClassPass)’로, 수천 개의 헬스클럽을 회원으로 두고 99달러만 내면 전국 어디서나 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모델은 이미 의료시장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전자부품연구원이 연세의료원, 솔트룩스 등과 함께 개발 중인 의료상담 챗봇(Chat bot)을 들여다보면 그 현황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국민 의료보건을 목적으로 건강상담에서 정서적 교감까지 수행하는 원스톱 솔루션이다. 예컨대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증상 입력→혼자 처치 가능한 정보 안내→이미지 예시→병원 안내→예약→사후관리’까지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가능하다. 물론 채팅뿐 아니라 음성안내까지 서비스되기 때문에 연령대와 관계없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플랫폼 운영자(Click)는 물론이고, 각 지역에 산재한 요양기관(Mortar)들과 일체형 서비스가 가능해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질병예방 기능까지 더해져 건강보험 예산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만, 이 모델이 피트니스 시장에 도입되면 미칠 파장에 대해서 분석한 연구나 전망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뱅자캥과 블랑슈가 늘 강조하듯이 건강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한국 피트니스의 진화는 아직 상류층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지도, 획기적인 사업 모델이 탄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만의 해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