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를 좋아하세요?
바게트를 좋아하세요?
  • 한기봉 전문위원
  • 승인 2018.09.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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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도니 입맛이 달라졌다. 주말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무얼 먹지, 하다가 갑자기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친 것, 그것은 바로 빵이었다. 우리에게 빵은 간식이나 디저트지 주식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에겐 그게 주식이거늘, 다 같은 입인데 그래 나도 빵을 한번 밥처럼 먹어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미쳤다. 그런데 무슨 빵을 먹지? 고민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만한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빵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까지 즐겨 먹는 빵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세계 공통이 된 파이와 케이크를 빼면 프랑스의 바게트와 크루아상, 영국의 머핀, 인도의 난, 멕시코의 토티야, 이탈리아의 파네토네 같은 빵이 국경을 초월해 사랑받는다. 이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빵은 단연코 바게트와 크루아상이다.

바케트(사진=픽사베이)
바케트(사진=픽사베이)

나에겐 바게트에 대한 향수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신문사의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동네 빵집에 그걸 사러 가는 건 작은 즐거움이었다. 지하철 요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값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살 수 있고, 빵 한 개로 한 끼 식사가 되고, 가운데를 잘라 좋아하는 부재료를 끼워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묘하게 향긋한 냄새와 방금 화덕에서 갓 구워낸 따스한 감촉이 참 좋았다. 바삭거리는 바게트에 신선한 버터를 발라 먹던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아이들도 막대기 같은 그 모양이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취재를 마치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레퓌블리크 광장의 비스트로에서 먹던 프랑스 특유의 양파 수프를 생각한다. 입안에 침이 감돈다. 버터에 볶은 양파의 달착한 맛, 진한 소고기 국물 맛, 그러나 무엇보다 치즈 그라탱에 덮여 수프 위에 띄워진 그 촉촉한 바게트의 따스하고 황홀한 식감을 잊을 수가 없다.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 빵집에서는 바게트를 쉽게 만나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든, 작은 동네 빵집이든 바게트와 크루아상은 기본으로 판매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두 가지 프랑스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바게트라고 쳐봤다. 10만 2000개 정도의 사진이 넘쳐났다. #바게트샌드위치는 1만 2000개, #바게트 맛집은 1600개 사진이 떴다. #크루아상은 더 많다. 비슷한 표기를 다 합해보니 무려 26만 개 사진이 포스팅돼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단팥빵은 훨씬 적은 7만 개였다. 

인스타그램에서 바게트로 검색한 결과. (사진=인스타그램 캡처화면)
인스타그램에서 바게트로 검색한 결과. (사진=인스타그램 캡처화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빵’은 우리나라 고유어가 아니다. 발음상 꼭 우리말 같지만 아니다. 그것도 영어권에서 온 게 아니다. 포르투갈어 ‘빠웅(pão)’이 국어가 된 것이다. 포르투갈은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일본과 교류한 나라인데 그 빠웅이 일본을 거쳐서 들어와 우리말이 됐다. 일본 발음도 빵이다. 스페인어는 ‘빤(pan)’, 프랑스어는 ‘뺑(pain)’이다. 포르투갈어 ‘타바코(tabacco)’가 일본을 거쳐 들어와 담바구 또는 담바고(淡婆姑)-담배가 된 것과 같다.

궁금한 김에 우리나라 빵의 역사를 찾아봤다. 1890년 러시아 초대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독일 여성 손탁이 공관 옆에 정동구락부를 개설하고 선보인 빵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당시에는 중국어를 따라 ‘면포(麵麭)’라 불렀고, 카스텔라를 백설처럼 하얗다 해서 ‘설고’라 했다. ​

프랑스인에게 바게트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활이다. 네 명 중 세 명이 매일 아침 바게트를 먹는다고 한다. 바게트를 둘둘 말아들고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먹는 회사원들이 부지기수다. 전국에 3만 5000개의 빵집이 있는데 소비가 줄긴 했지만 하루에 구워지는 바게트는 3000만 개라고 한다. ‘불랑주리(boulangerie)’라고 불리는 빵집의 휴가는 구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바게트(baguette)는 그냥 ‘막대기’라는 단어다. 크루아상(croissant)은 그 모양처럼 초승달이라는 뜻이다. 바게트는 평범한 이름이지만 이 빵이야말로 지구촌에서 가장 스토리텔링이 많은 빵이다. 우선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빵으로 통한다. (계란찜처럼 단순한 음식이 만들기 어렵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리고 들어가는 재료가 국가의 법으로 규정된 유일한 빵이다.  

프랑스 정부는 바게트를 굽는 법, 맛, 향, 모양을 200년 넘는 전통방식 그대로 지키고자 1993년 법으로 정했다.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 네 가지만을 사용해 만들도록 했다. 길이는 55~70㎝, 폭은 5~6㎝, 무게는 250g~300g을 지켜야 한다. 반죽 표면에 칼로 사선 모양의 금을 나란히 그어 넣고 물을 뿌려 굽는다. 굽는 시간은 날씨와 습도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규정하진 않았지만 보통 17분 정도 굽는다고 한다. 이 방식을 지키는 빵만을 바게트라 명명한다. 파리에서는 매년 바게트 그랑프리(Grand Prix de la Baguette de la ville de Paris)대회를 열어 이 전통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 콘테스트 우승자에게는 일 년간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납품하는 특혜가 주어진다. 

프랑스 바게트 경연대회 모습. (사진=채널A 영상뉴스 캡처)
프랑스 바게트 경연대회 모습. (사진=채널A 영상뉴스 캡처)

바게트는 단지 허기를 채워주는 밀가루 이상의 신비한 그 무엇이 있다. 밀가루와 소금만으로 만든 빵이 어떻게 그런 오묘한 맛을 낼 수가 있을까. 기교가 없다. 거짓도 없다. 모양도 사실 보잘 것 없다. 늙은이의 거친 손등 같다. 그러나 바삭한 겉과 달리,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하면서 부드러운 속살을 가졌다. 누룽지처럼 고소하고 담백한 것 외에 아무런 잡스런 맛이 없이 오로지 빵다운 빵, 무언가 부족한 듯 충만한 식감의 빵, 그것이 바로 바게트의 매력이다.

그런 바게트에 민중혁명의 역사가 서려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에는 귀족과 서민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흰 빵(귀족)을 먹느냐, 검은 빵을 먹느냐였다. 그러나 대혁명이 성공한 후 국민공회는 프랑스 국민은 누구나 다 재료와 성분이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이른바 ‘빵의 평등권(Pain d’égalité)’을 선포했다. 

빵은 차별의 상징에서 평등의 상징이 됐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는 시민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 했다는 말이 오래 회자됐다. (이 말은 사실 혁명군이 오스트리아 왕족 출신의 사치스런 그녀를 증오해 악의적으로 퍼뜨리고 단두대에 세웠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바게트는 1980년에 와서 가격이 자율화됐지만 아직도 민중의 전통이 남아 가장 저렴한 빵이다. 한 개에 대략 1유로(약 1300원) 선이다. 우리나라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바게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나폴레옹 집권 당시 병사들이 군복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편안하게 행군할 수 있도록 길쭉한 빵을 고안해 냈다는 것부터, 빵문화가 발달한 오스트리아의 팽 비에누아(pain viennois)라는 빵이 파리에 들어와 발전했다는 설도 있다. 파리 지하철(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맞춰 개통)을 건설할 때 노동자들이 칼 없이도 잘라 먹을 수 있는 막대기 빵을 갖고 다닌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바게트라는 이름은 1920년대에 붙어졌고 30년대부터 프랑스인의 주식이 됐다.

재미있는 건 제빵 노동자와 관련된 설이다. 빵집 노동자들은 아침식사 시간에 빵을 대기 위해 ‘화이트 마이너’(white miner, 검은 석탄가루 대신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광부)로 비유될 정도로 과중한 밤샘 근무에 시달렸다. 노동자를 걱정한 프랑스 정부는 1920년에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노동법을 만들었다. 그러자 아침 식탁에 올리기 위해 빵을 굽는 시간을 크게 단축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빵의 형태는 둥근 모양에서 점점 가늘고 길쭉한 막대기처럼 변했고 이 빵에 바게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전의 빵은 둥근 공 모양이었다. 공은 불어로 ‘불(boule)’이라고 하는데, 제빵사를 의미하는 ‘불랑제(boulanger)’는 ‘공 모양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지난 1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게트는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의 상징이라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네스코는 2010년 프랑스의 ‘미식문화’(gastronomic meal of the French)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은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나폴리피자가 먼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상처를 입었다.

바게트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다. 바게트를 사러 오랜만에 ‘XX바게트’라는 프랜차이즈 빵집에 갔다. 진열대의 빵들은 정말 색깔과 모양과 재료가 백화제방이다. 예쁘고 화려하고 다 맛있어 보인다. 못 먹어본 빵이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요즘의 빵집에 가면 촌스런 사람처럼 풍요를 느낀다. 장발장까진 아니었지만 맛난 빵 하나에 목숨을 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내 나이쯤 되면 누구나 다 빵에 대한 추억이 있다. 베이커리도 아니고 불랑주리도, 파티스리도 아니다. 그냥 그때는 다 ‘OO당’이었다. 아날로그 흑백사진 같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전국의 유명 빵집을 찾아 여행하는 ‘빵지순례’가 유행이고, 먹방 쿡방의 전성시대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빵은 눈물과 웃음의 성장 영화다. 빵셔틀은 없었지만 빵집은 거의 유일한 일탈의 장소였다. 까까머리까지 감추진 못했지만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빵집에서 여학생과 소개팅을 했다. 그러다 합동 야외지도 교사에게 걸리면 이름을 적혔고 징계를 받았다. 군대 PX에서 허겁지겁 몇 개씩 사먹던 눈물 젖은 단팥빵. 그 단팥빵이 요즘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내 유년과 청춘의 빵들을 기억해 본다. 풀빵 찐빵 호빵 술빵 건빵 옥수수빵 크림빵 계란빵 국화빵 소보루빵 붕어빵… 요즘의 빵들에 비하면 그 이름도 모양도 얼마나 수수했던가. 노랑 파랑 보라색 마카롱을 집어 들었다. 빵이라기보다는 프랑스 과자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게 하나에 2500원이었다. 슬며시 내려놓았다. 

한기봉 칼럼니스트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홍보기획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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