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은 국민연금 고갈되면서 적립식→ 부과식 전환, 일본은 보험료 인상 및 수령 연령 상향 등 대대적인 개혁 단행
- 국민연금 고갈 예상되는 2057년까지 아직 대응할 여지 남아있어

[데일리비즈온 권순호 기자] 국민연금을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뜨겁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나이가 들어도 연금 혜택을 못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금 고갈에 대비해 앞으로 어떻게 연금제도를 개선할지를 두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되면 정말 연금 못받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민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했던 유럽은 일찍감치 국민연금이 고갈되었지만 현재도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이유는 국민연금 운영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 유럽은 ‘적립 방식(reserve-financed method)‘으로 운영하였다. 미리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기금을 모아 운용하고, 나이가 들면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도 ’적립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재정악화로 국민연금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기존 적립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부과 방식(pay-as-you-go method)‘으로 변경했다. ‘부과식’은 당해에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보험료를 거두어 연금 수혜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고갈돼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운영방식을 바꾼다면 국민들은 연금 혜택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일각의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연금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우려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험료가 상승하는 등 다음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문제가 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독일, 일본, 네덜란드 사례
먼저, 국민연금 운영방식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전환한 독일을 살펴보자.
독일은 적립식 연금제도를 운영하다가 기금이 고갈되자 부과식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국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금 적립기금이 전시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국민연금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연금 보험료가 급증할 것을 대비해 1957년부터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연금 운영방식을 전환했다.
독일 정부는 2002년에 은퇴세대가 늘어 연금재정 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보건복지부 산하유럽위원회를 설치하고 연금 급여 수준이나 지급 시기를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적립식 연금제도를 운영하다 대대적인 연금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일본은 오랜 경기침체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연금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4년 대대적인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 후생노동성은 급여의 13.58%였던 연금보험료를 2004년부터 매년 0.354%씩 단계적으로 올려 2017년에는 18.30%으로 고정시키고, 지급 연금액은 현역 남자 평균수입 59.3%에서 2023년까지 50.2%까지 낮추었다. 최저 50% 수준 지급은 국가가 보증하기로 했다.
또한, 젊은 세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 등에 연동해 자동으로 조절하는 장치인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후생연금의 수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올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약 1700조 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민간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공적연금펀드(GPIF)‘에서 운용 중이다. 작년 GPIF의 공적연금 운용은 10조7208억 엔(108조8300억 원) 흑자와 수익률 6.9%를 기록했다.
네덜란드는 연기금 운용부서를 독립해 전문성을 향상시켜 연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였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네덜란드 공적연기금(ABP)’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내부 부서를 통해 자금을 운용해오다 2008년 자회사인 APG(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를 설립했다. 기금운용부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운용과 관리를 분리하고 전문인력을 배치했다.
자산배분에도 변화를 주어, 주식과 채권 위주에서 대체투자 부문의 비중을 늘렸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 연기금의 자산배분 비중은 2008년 주식(51.3%) 채권(44.8%) 대체투자(3.7%)에서, 2017년 9월 말 기준 채권(38.5%) 주식(35.3%) 대체투자(26.3%)로 바뀌었다. 대체투자 부문에서 음원·영화·미술·문학작품·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 투자해 연 10%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네덜란드 공적연기금’ 규모는 511조 원(4090억 유로)으로 한국(622조 원)에 이어 세계 4위다. 하지만 운용인력은 네덜란드가 694명으로 한국 329명보다 2배 이상 많다. 2013~2017년 5년간 평균 수익률은 네덜란드 연기금이 8.1%로 한국 5.2%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고갈시점인 2057년까지 있어...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지난 17일 보건복지부에서 개최한 ‘국민연금 제도개선방향에 관한 공청회’의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 수준을 현행 40%에서 45%로 높이고, 2019년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2%포인트 올린 11%로 높이는 방안이다. 향후 5년마다, 재정 안정을 위한 필요 보험료율이 18%를 넘어서게 될 경우, 정부 재원 투입이나 수급연령 조정 등을 고려해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다른 방안은 2단계로 구성됐다. 우선 소득대체율을 현행 40% 수준으로 유지하고 내년부터 10년 동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5%까지 인상한다. 이후, 2033년부터 4043년까지 연금을 받는 나이를 만 65세에서 67세로 점진적으로 높여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다.

한편,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의 개선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013~2017년 5년간 우리나라 연기금 평균 수익률은 5.2%로 세계 6대 연기금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7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비중은 채권 50.6%, 주식 38.6%, 대체투자 10.8%로 대부분 국내 채권과 주식에 쏠려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발표한 ‘중기 자산 배분안(2019~2023년)’에서 자산배분 비중을 채권은 40% 내외로 축소하고 주식과 대체투자를 각각 45%, 15%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3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면 기금 고갈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험료 부담 증가나 연금 삭감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란 장애물을 현명하게 넘어가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의 연금기금 고갈 시점은 2034년이지만, 미국언론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난파위기’에 처해다는 보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성급하게 위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고갈시점인 2057년까지 앞으로 40년 가까이 남았다. 그동안 대응할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만큼, 우리나라 인구구조에 대비하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조속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