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지방정부의 '러브콜'에 현대차 이어 기아차도 현지 시장 안착 예상
-지방정부의 임대료 인상 요구에 한국 기업이 쫓겨나는 상황도 발생
-지방정부간 이해관계 충돌로 분권화 효과 반감되기도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분권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흔히 지방정부간 '경쟁 이론'을 강조한다. 지역색이 워낙 강해 종종 트러블을 일으키는 지방정부들에 오히려 강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방정부 간 경쟁을 통해 국가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특정 상황에서 대단히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앙정부의 통제에 협력적이지 않고 민족 갈등이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일괄적인 정책 드라이브 없이 효과적인 성장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이 가속화되던 90년대 이래, 수입대체공업화를 고수하던 중국과 인도 등 이른바 '사이즈가 큰 신흥 국가'들이 이와 같은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통제나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게 되고, 인건비나 규제 부담에 신규 시장을 노리던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들 신흥국가의 경제 성장은 가속화됐다.
◆지방정부, 글로벌 기업 유치해 지역경제 발전 이뤄
중국의 칭다오는 오늘날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이다. 칭다오의 고성장 뒤에는 한국 자본의 활발한 진출 러시가 있었고, 그 뒤에는 칭다오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외자 유치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의 첸나이는 1996년 현대자동차의 현지공장 설립으로 한국인에게 유독 익숙한 곳이다.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냐고 먼저 묻기보다 한국인임을 바로 알아맞히는 현지인들과, 한식당과 현지 한국 법인의 주소를 네비없이 능숙하게 찾아내는 택시 기사들은 볼 때마다 놀라움을 안겨준다.

현대차와 여러 계열사들, 협력업체들의 동반 진출이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덕분이다. 2000년대 이래로 타밀나두 주 일대 주민들의 고용이 대폭 증가했으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일대의 도로, 수도 등 인프라를 확충하고 발전 설비를 들여옴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 2013년에는 회사법 개정으로 사회공헌(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의무화되자 기업들의 지역 사회를 위한 기여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기아차가 2016년 인도에 공장설립을 결정했을 때에도 각 주정부는 기아차의 관심을 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었다. 이미 현대차가 입주해 있는 타밀나두 주 정부를 포함하여 5~6개 주 정부 관계자들이 기아차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기아차의 최종 선택지는 타밀나두 주 북부의 안드라 프라데시였다.
인도 중앙정부 역시 대체로 분권화로 인한 효과에 만족하고 있다. 지방 정부가 투자와 발전을 위한 정책을 스스로 수립하게 하고, 발전을 위한 자금을 중앙에서 송금해주는 대신 자체로 세수(稅收)를 확대하게끔 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기존의 '말썽꾸러기'인 지방 정부들을 중앙 정부에 순응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예가 '첸나이'다. 첸나이는 이전부터 인종, 언어의 차이로 분리독립을 주장해오던 도시였다. 또한, 총리가 폭탄테러로 암살되기도 하는 등 늘 정치적 불안정성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 적합한 입지 조건으로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인도의 디트로이트'로 불리고 있다. 인도의 자동차 기업으로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그룹의 연구센터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닛산자동차 등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의 생산공장이 첸나이에 위치해 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산업 친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며, 첸나이와 중앙정부간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정부 입장에선 골칫거리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지방정부 횡포로 한국 기업 쫓겨나기도...신신상사가 대표적
하지만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가 언제나 외국 기업에게 유리한 결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대표적인 예로, 칭타오에서 2012년에 신신상사가 퇴출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과거, 칭다오에 있는 한국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인 신신체육용품유한공사(신신상사의 중국 법인)는 배구공과 농구공 등 스포츠 용품 ‘한류’의 주역으로 통했다.

신신은 공장이 있는 중한촌(中韓村, 한국의 읍 정도에 해당)과 1991년 50년간 토지를 사용하는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외자 유치를 위한 지방정부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촌정부는 2012년 중앙정부가 1999년 제정한 중국계약법(최장 임대 기간 20년)을 소급 적용하기 시작했다.
돌연 임대료를 500% 인상하고 임대 계약을 2년마다 갱신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신신이 거부하자 촌정부는 임대료를 체납했다며 토지 임대 계약 무효를 선언하고 주민들을 동원해 공장을 봉쇄했다. 지방정부가 지역 재개발이나 임대료 인상에 나서면서 불거진 결과다. 결국 신신은 해당 지역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지방정부가 세수 증가를 위해 부동산 개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외자 기업이 지방 공무원의 재선을 위한 표를 끌어오거나, 지역 세수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의 가치가 떨어진 결과라고 파악할 수 있다.
◆중앙-지방정부간 엇박자가 문제...종종 심각한 사태 야기하기도
지방정부의 성과 지상주의는 중앙정부 정책과도 잦은 마찰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중앙정부가 부동산 긴축 정책을 실시할 때 지방정부는 부양 조치로 맞서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부동산이 지방정부의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인도의 예에서도 보았듯, 철강과 자동차 등 과잉공급 업종에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에서도 지방 곳곳에서 대규모 전시장을 만들어 자동차 모터쇼를 개최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앙정부의 구조조정 주문에 지방정부는 자기 지역 업체가 피인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맞선다.
중국보다 지방에 대한 통제가 약한 인도에서는 종종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현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집권하기 이전 만모한 싱 인도국민회의 정부는 대외정책 문제로 지방정부와 종종 충돌하곤 했다. 만모한 싱 정부는 타밀나두와 웨스트 벵갈 등 종종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문제아'들을 껴안은 연립 정부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리랑카와의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타밀나두 주 정부의 반대가 심했다. 스리랑카는 당시 내부 타밀족과의 내전을 막 끝낸 상태였고, 스리랑카 타밀족과의 민족적 가치를 공유하는 본토의 타밀 주 정부가 스리랑카와의 관계 개선에 거부감을 표출한 것이다. 결국, 스리랑카와의 경협 확대는 모디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진척될 수 없었다.
◆바람직한 한국형 분권화 모델은?
이렇듯, 분권화는 칼로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늘 강조하듯 분권화가 요구되는 국가이다. 지자체간 재정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역지자체 전체 재원의 6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세를 늘려도 세수부담만 가중될 뿐 지자체 간 재정 비율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역설적으로 더 차이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세수를 스스로 확보하고 확대할 수 있는 분권화 방안이 요구된다. 한국의 분권화는 중국과 인도, 혹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슷한 모습이 될까?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한국형 분권화 모델' 수립을 위한 활발한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는데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6월 지방선거에 따른 여파가 잦아들고 이제 각 지자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며 "해외 분권화의 성공·실패사례들을 참고해 우리에게 맞는 분권화 모델 찾기 시도를 본격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