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소송 당사자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국제재판부’가 문을 연다.
특허 분쟁이 국제적인 규모로 이뤄지는 추세에 맞춰 특허법원은 국어와 영어로 재판을 진행하는 국제재판부를 설치키로 하고 지난해 법원조직법을 개정했다.
특허법원은 23일 대전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설립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국제재판부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발표했다.
국제재판부는 특허 침해소송이나 심결취소 소송 등 특허 관련 소송 1심을 담당하는 지방법원과 2심을 맡는 특허법원에 설치된다. 지난해 개정된 법원조직법에 따라 6월 13일부터 운영되는 ‘국제재판부’는 변론과 증거제출을 영어로 할 수 있다.

현행법상 법정에서는 ‘국어 사용’이 원칙이지만, 소송 당사자들이 동의하면 외국어 변론이 가능하도록 예외를 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대전특허법원 2곳에 우선 설치
국제재판부는 대전 특허법원과 서울중앙지법 곳에 먼저 설치된다. 대전지법, 대구지법, 부산지법, 광주지법 등 4곳은 앞으로 국제사건의 수 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법원장이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어는 우선 영어로 하되, 앞으로 국제 특허분쟁의 숫자를 고려해 일본어와 중국어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제재판부를 담당한 이규홍 판사는 “재판장은 국어를 사용하고, 동시통역시스템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판결문 역시 국어로 작성된다. 소송 당사자는 국어나 영어로 변론이 가능하다.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은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 역시 한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호주 등 10여개 법정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각국 특허권자들은 어느 나라법정에서 특허 소송을 할 것인지 저울질 하는 ‘전략적인 포럼 쇼핑’을 벌인다. 자연히 지식재산권 법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특허법원의 우성엽 판사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연합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에서 국제재판부를 설치한 국가는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등이다. 이들 국제재판부도 쌍방 동의가 있는 경우 외국어 변론을 허용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자국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 절차를 모두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6월 13일 출범하는 우리나라 국제재판부의 단기목표로 ‘3년 안에’ 국제특허분쟁에서 각국 이해당사자들이 선호하는 재판부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이다.
국제재판부는 외국에서 진행하는 지식재산 관련 소송에 유익한 영향을 주고, 다른 아시아 국가와의 교류가 강화되면 아시아 특허분쟁 해결의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자로 나선 한상욱 변호사는 “국제재판부는 우리나라가 특허분쟁에서 아시아 허브국가로 나가는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어 “영어로 재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어로 된 판결문의 검색가능성을 높이고, 동시통역되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법정에서 문자로 변환돼 화면에 올라오는” 첨단기능이 설치되기를 희망했다.
한 변호사는 자문위원이나 조정위원 및 전문심리위원에 외국인을 늘려 교류의 장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LG 디스플레이 지식재산 담당 오정훈 상무는 “미국제도는 종신제이므로 판사의 성향 등을 미리 파악해서 법정을 고르는데, 우리나라는 판사 성향이 파악이 안되므로 국제재판부 판사의 임기를 늘리고 관련 자료를 많이 공개하면 예측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통합특허법원(UPC)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영국의 케빈 무니 변호사는 “재판은 항상 정의롭게 해야 하며 영어로 하면 정의가 더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니 변호사는 아시아 통합 특허법원으로 발전하려면 정치가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판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 사이의 유대와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무니는 유럽에서 각국의 정치논리와 자국 이기주의에 묶여 유럽통합특허법원의 출범이 늦어질 때 각국 저명한 판사들이 2006년 서명한 ‘베니스 결의안’(Venice Resolution)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한국인 지식재산 전문가인 민은주 씨는 한국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외국에서도 받아들여지는 ‘집행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민 씨는 우리나라의 국제재판부가 비용과 속도 면에서는 장점을 가진 만큼, 와이포 본부가 있는 제네바 등에서 국제재판부를 적극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광연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은 소송 도중이라도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변론조서, 녹취록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광범위하게 공개하는 “소송기록의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부회장은 이런 절차가 특허법원에 도입되어야 하며 “국제재판부에서 만이라도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지식재산 허브국가로 발전해야
한편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는 ‘특허법원의 미래’에 대해 국제재판부는 20년, 30년 후 한국이 지식재산의 허브국가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한국 내에서 지식재산(IP) 생태계를 혁신하고, 지식재산(IP) 허브 기반을 조성하며, 글로벌 지식재산(IP) 허브국가로 발전하는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회 세계특허허브국가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정갑윤 의원, 원혜영 의원, 이광형 교수)가 19대부터 국회에 구성됐다. 추진위원회는 2015년 민사소송법과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서 ‘특허재판의 관할집중’을 달성했으며, 2016년에는 특허법 개정으로 증거제출 명령을 시행했으며, 2017년은 국제재판부 신설 및 지식재산의 날(9월 4일) 제정 등의 성과를 냈다.
이 교수는 특허법원에게 “동북아의 지식재산 허브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