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4,000년 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엄청나게 큰 화산폭발이 있었다. 이 여파로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호수인 토바(Toba)호수가 태어났을 정도이다. 토바 화산폭발은 과거 250만년 사이에 발생한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화산폭발로 알려져 있다.
이 토바화산폭발에서 ‘토바 재앙 가설’이 나온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날리면서 화산겨울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몰살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토바 재앙 가설은 특히 동부 아프리카와 인도에도 영향을 미쳐 지구 인구가 격감했을 것이라는 ‘인구 병목’(population bottleneck)을 주장한다.
그러나 동부 아프리카의 말라위 호수 침전물을 분석한 결과, 토바 화산 폭발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미국 과학자들이 주장했다. 이들은 호수 바닥 침전물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연구결과를 ‘인간진화저널’(Journal of Human Evolution )에 발표하고, ‘토바 재앙 가설’에 장례식을 치룬다고 선언했다.

토바 화산 폭발은 6년 동안의 ‘화산 겨울’을 불러일으켰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 큰 재앙이 닥쳤을 것이다. 그런데 화산겨울이 과연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분분했다. 만약 동 아프리카에도 화산겨울이 왔다면, 이 지역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말라위 호수 침전물 시료 300년 치 분석
미국 애리조나 대학 연구팀은 토바 화산 폭발이 동아프리카에도 화산겨울을 불렀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라위 호수(Lake Malawi) 바닥에 구멍을 뚫어 시료를 채취했다.
시료채취 계획인 ‘말라위 채굴프로젝트’(Lake Malawi Drilling Project)는 2005년에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중 하나인 말라위 호수 바닥 시료는 100만년 이전까지 침전물을 포함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번 논문의 공저자로 참여한 애리조나 대학 지구과학과의 앤드류 코헨(Andrew S. Cohen)교수가 시작한 것이다.
이 시료에 대한 분석은 애리조나 대학 지구과학 박사과정인 채드 요스트(Chad L. Yost)가 맡았다.
식물과 동물에서 나온 물질은 말라위 호수로 쓸려 들어가면서 매년 층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인다. 말라위 호수 바닥의 침전물 시료는 호수와 주변 지역의 과거 환경기록을 차곡차곡 가지고 있다.
침전물 시료는 2곳에서 채취한 것이다. 하나는 호수 북쪽 산과 가까운 곳이고, 다른 하나는 호수의 중심부이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 시료의 어떤 층에서 토바화산폭발에서 온 유리와 크리스탈을 발견했다.
요스트는 화산폭발을 전후한 시기에 생긴 침전물 시료에서 샘플을 채취해서 숯과 식물암(hytoliths) 분석했다. 식물암은 식물세포가 규소를 포함한 무기물로 굳어진 미세한 조각이다. 요스트는 식물암으로 굳어진 식물이 어떤 식물인지를 판별하는 전문가이다.
만약 토바 재앙 가설이 사실이라면, 화재를 일으켜서 더 많은 숯이 호수로 쓸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요스트는 화산 폭발 이후 생긴 침전물에서 숯의 증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요스트는 “토바 화산 폭발은 동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식물에 부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번 연구가 토바 재앙 가설의 관에 마지막 박는 못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라위 호수는 길이 570㎞, 너비 75㎞에 달하는 동부아프리카의 호수로서 전체면적은 29,000㎢나 된다. 가장 깊은 곳은 706m로 모잠비크, 말라위, 탄자니아 등에 걸쳐있다.
식물암에서 숯 흔적 나오지 않아
앞선 다른 연구에서는 말라위 호수 침전물에서 토바 화산폭발에서 날아온 물질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토바 화산 폭발의 정확한 시점을 콕 집어낼 수 있다. 요스트와 동료들은 토바 폭발 이전 100년과 폭발 이후 200년의 시기를 조사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폭발전후 300년을 8.5년 단위로 나눠 침전물 샘플에 있는 토바의 흔적을 분석했다. 이는 시료를 3~4㎜ 두께로 분석했음을 말한다.
요스트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토바화산폭발의 규모를 볼 때 심각한 냉각을 예상했지만,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그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말라위 호수 시료 채취 작업 ⓒUniversity of Arizona
만약 토바 화산 폭발 이후 동아프리카 지역의 기온이 수년 간 낮아졌다면, 이 지역의 모든 고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대량 고사의 증거가 침전물 샘플에 나와야 한다.
요스트는 말라위 호수 50㎞안의 저지대에 사람들이 살았지만, 토바화산폭발로 발생한 기온저하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고고학적 자료는 대부분 산악지대가 아니라, 저지대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코헨 교수는 “75,000년에 지구에서 발생한 한 사건으로 세계 인구가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지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이 과연 토바 재앙 가설을 완전히 가라앉힐지 주목을 끈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